세계의 분쟁지역

쿠르드족 독립을 줬다 빼앗은 영국

hongsamdori 2023. 1. 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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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르조약

로잔 조약으로 좌절된 쿠르디인의 독립 국가

제1차 세계대전은 쿠르디인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 준 시기입니다. 1890년대 후반 쿠르드인 사이에서 등장한 민족주의 움직임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 나타나기 때문에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인을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 참여시키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입각한 전후 처리 문제를 주장하는데요. 윌슨 대통령이 제시한, 전쟁 관련 이행당사국간 세력 균형보다는 민족자결권을 우선시한 국경선 재조정 원칙은 쿠르드인에게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하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 영토 분할을 추진하는데요. 이 와중에 그리스는 1919년 3월 동부 트라키아와 아나톨리아 남서부 이즈미르를 차지하기 위해 터키를 침공하는 그리스-터키 전쟁을 일으킵니다. 터키 무스타파 케말을 비롯한 터키인들은 1919년 5월부터 터키 독립전쟁을 시작하죠. 1920년 8월10일 과거 오스만 제국 영토를 분할 획정하는 조약이 프랑스 파리 근교 세브르에서 열립니다. 세브르 조약에서는 보스포루스 다니다넬스 해협과 마르마라해에 대한 국제적 개방, 이스탄불 주변 트라키아 지방을 그리스로 합병, 터키 이즈미르 지방에 대한 위임 통치, 시리아 레바논에 대한 프랑스의 위임 통치, 아르메니아와 쿠르디스탄 독립 국가 인정 등이 결정됩니다. 하지만, 당시 터키 지도자 케말은 오스만 제국 술탄이 비준한 조약을 거부합니다.

세브르 조약에 대한 터키 반대에 직면한 영국은 민족자결권을 고려한 국경선 재조정 원칙을 수용하고, 독립을 승인한 아르메니아와 쿠르디스탄에 대한 식민 통치를 미국에게 제안하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합니다. 결국 영국은 쿠르디스탄 독립과 자치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핵심은 두 가지로 결정됩니다. 하나는 터키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케말이 지향하는 터키의 서구화와 세속화, 친서방 외교 노선 등이 쿠르디스탄 독립 국가보다 중요하게 고려됐다는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터키가 쿠르디스탄 독립과 이라크 북부 핵심 유전지대인 모술 지방을 영국령 이라크에 편입시키는 계획 두 가지 모두를 반대했기 때문에 영국은 쿠르디스탄 독립을 포기하고 대신 모술을 선택한 것이죠. 석유 자원 확보라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1923년 7월 세브르 조약을 대신한 로잔조약이 다시 체결되고, 로잔 조약 내용에는 쿠르디스탄 독립 국가 수립이 사라져 버립니다. 영국이 내걸었던 민족자결권과 소수민족 보호라는 대의명분은 제국주의 이익에 따라 폐기되고, 쿠르디스탄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으로 쪼개집니다. 1927년 터키에 분포하는 쿠르드인은 아라라트공화국을 선포하지만, 1930년 터키 정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터키에 합병시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12월 이란 북동부를 중심으로 구소련 지원을 받은 마하바드 쿠르드공화국이 수립되지만, 이 또한 1년 만에 좌초합니다. 1930년 이후 터키 이라크 이란 등은 각국의 민족주의를 구현하는 정책에 반대하는 쿠르드인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억압하는데 그중 터키가 가장 심하게 탄압합니다. 이후 쿠르디스탄에서 쿠르드인 독립 국가 수립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로잔조약 참석자들

중동 각지에서 벌어지는 쿠르드인 분리독립운동

쿠르드인은 터키 이라크 이란 시리아 등 4개국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분리 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동부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 산악 터키인으로 간주했습니다. 터키 건국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죠. 터키는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쿠르드인이 분리주의 운동을 벌이면 국내 안정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저히 탄압하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는 쿠르드어 사용은 물론이고 쿠르드 전통 의상 착용 금지 등 쿠르드 문화 말살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그럼에도 1970년대 후반부터 쿠르드인 분리주의 운동은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1978년 압둘라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자당을 조직해 분리 독립 운동을 벌이고, 1984년경 본격적인 무장 투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터키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투쟁 활동은 약화했고, 이 과정에서 4만여명의 쿠르드인이 사망합니다. 1999년 2월 오잘란이 체포되면서 활동은 더욱 위축되지만 2000년대에도 반군 활동은 계속됐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 터키는 쿠르드노동자당에 유화책을 제시하고, 2013년에 휴전이 성사됩니다. 그러나 2012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시리아계 쿠르드인 난민이 터키 동남부로 들어오면서 상황은 복잡해졌습니다.

이라크는 쿠르드인 분리 독립 운동이 가장 활발한 곳입니다. 1946년 결성된 쿠르드민주당과 1975년 조직된 쿠르드애국동맹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반정부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습니다. 1970년 당시 아라크 바트당 정부는 쿠르드인에게 제한적인 자치를 허용합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는 쿠르드인이 이란-이라크전쟁에 이란이 제공한 무기로 이라크군을 공격하자 전쟁 후 쿠르드인 거주 지역에 화학 무기를 살포하 5천명여명이 사망하거나 다치게 하는 비인도적 행위를 자행합니다. 이에 많은 쿠르드인이 인접국으로 피난을 떠납니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는 걸프 전쟁이 일어나자 쿠르드인은 내전을 일으키고, 2003년 3월 미국-이라크 전쟁에는 쿠르드인이 미국을 지원합니다. 하지만 후세인 정부 붕괴 후에도 쿠르드인 독립 국가 건설은 성사되지 못합니다.

이란에서는 1945년 쿠르디스탄 자치를 내걸고 이란 쿠르드민주당이 조직됩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후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강 사태로 접어듭니다. 터키에서 반군 활동을 하는 쿠르드노동자당 분파로 알려진 쿠르드자유생명당이 2004년 창설돼 반정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란 쿠르드인이 벌이는 분리 독립 운동은 터키나 이라크에 비해 소극적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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