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분쟁지역

쿠르드 자치정부는 독립할 수 있을까

hongsamdori 2023. 1.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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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디스탄 중 쿠르드인의 독립 국가 건설이 가능한 곳은 어디가 있을까요. 일단, 모두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각 국가들에서 쿠르드족의 독립을 강하게 막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중 이라크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황이 조금 다릅니다. 현재 이라크 북부에서는 쿠르드 자치정부(KRG)가 만들어져 자치가 행해지고 있는데요, 자치정부는 이라크 헌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법적 기구입니다. 다후크, 아르빌, 술라이마니아 등 3개 주로 구성돼 있고, 그 유명한 아르빌이 수도입니다. 자치정부의 인구는 2002년 기준 375만명 정도이고, 군대 역할을 하는 약 20만명의 민병대 '페시메르가'도 있습니다. 자치정부는 크르드민주당과 쿠르드애국동맹을 연합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요. 쿠르드민주당은 북부를, 쿠르드애국동맹은 남부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며 서로 경쟁적인 관계입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핵심 도시 알레포

걸프전으로 만들어진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역사는 19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걸프 전쟁 이후 미국과 역국 프랑스 드은 북부 쿠르드인과 남부 시아파 거주 지역을 당시 사담후세인 이라크 정부의 공군 폭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북위36도선 이북 영공과 북위 32도선 이남 영궁에서 이라크 공군이 비행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비행금지 구역' 두 곳을 설정합니다. 때문에 인접국으로 피난을 간 쿠르드인들이 돌아왔고, 1992년 정당연합체인 이라크 쿠르디스탄 전선(INK)이 의회와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자치정부가 출범합니다. 하지만, 1994년 쿠르드민주당과 쿠르드애국동맹이 권력 다툼으로 내전이 일어나 쿠르드민주당은 북부 아르빌에, 쿠르드애국동맹은 남부 술라이마니야에 각각 별도의 행정부를 만들어 통치하다가 1998년 내전이 끝납니다.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때 쿠르드인 민병대 '페시메르가'는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 일원으로 참전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하는데 일조합니다. 이라크 전 이후 후세인 정부가 붕괴되고 2005년 새로운 이라크 헌법이 제정되면서 쿠르드인 자치정부와 쿠르드인 의회도 승인되죠. 2006년 5월 쿠르드민주당과 쿠르드애국동맹이 연합해 자치정부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쿠르드인 자치가 행해지게됩니다. 2013년과 2018년 치러진 선거에서도 선거 연합을 통해 두 정당이 자치정부를 운영합니다. 자치정부는 2017년 9월 분리 독립에 대한 주민 투표를 추진해 압도적인 찬성 결과를 얻는데요. 이라크 정부는 중앙정부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투표행위 자체를 반대하면서 2017년 10월 자치정부의 핵심 경제 기반인 키르쿠크 유전지대를 점령합니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는 독립할 수 있을까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도 독립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평가입니다. 우선 정치 세력 간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자치정부를 공동 운영하는 쿠르드민주당은 독립에 적극적이지만, 쿠르드애국동맹은 그렇지 않습니다. 또한 인접국과의 국경선 획정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터키와 경계 설정은 쉽지 않고, 독립에 성공한다고 해도 도로를 통한 통행과 통관 등에 따른 제약은 구조적으로 매우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치정부의 존립 기반이되는 유전 도시 키르쿠크의 관할권도 문제입니다. 키르쿠크는 이라크 석유 매장량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경제적 요충지이자 쿠르드인보다 아랍계 주민 비율이 높은 도시입니다. 1970년대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이라크 정부가 키르쿠크에 거주하던 쿠르드인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라크 중앙정부 입장으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터키 등 주변 강대국들이 쿠르드인 독립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쿠르드 독립이 주변국과 군사적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고, 터키는 자국 내 쿠르드인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더 강경하게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의 독립을 반대합니다.

현재 이라크 정부가 나름 균형을 유지하면서 순항하고 있다는 점 또한 쿠르드 독립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지금 이라크는 남부 시아파, 중부 수니파, 북부 쿠르드 영역으로 사실상 3등분 돼있는데요. 정치적으로 보면 대통령은 쿠르드계, 총리는 시아파, 의회 의장은 수니파가 각각 맡고 있습니다. 쿠르드 자치정부가 독립을 요구하는 순간 현재 균형은 깨지게 됩니다.

쿠르드인 정치 조직인 민주연합당(PYD)이 만든 무장 단체 인민수비대(YPG)의 특수부대의 모습

시리아에서도 쿠르드 자치정부가 가능할까

2012년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쿠르드인은 반정부 세력에 가담했습니다. 쿠르드인은 알아사드 정권으로부터 많은 탄압과 차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쿠르드인 약 30만명은 시리아 시민권을 박탈당하기도 했습니다. 시리아 정부는 쿠르드인 분포 지역에 대한 아랍화 정책을 실시해서 쿠르드인 토지를 몰수해 아랍계 주민들에게 재분배하는 일도 벌였습니다. 

때문에 내전이 일어나자 쿠르드인은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내전 초기 쿠르드인은 시리아 정부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르다가 IS가 등장하자 IS를 상대로 전투를 벌입니다. 2013년 중반 IS가 북동부 쿠르드인 거주 지역을 공격하자, 쿠르드인 정치 조직인 민주연합당(PYD)이 2004년경 만든 무장 단체 인민수비대(YPG)가 IS 격퇴의 선봉장 역할을 합니다. 2015년 10월 쿠르드인을 주축으로 아랍계, 투르크계가 함께 만든 시리아민주군(SDF)은 수도 락까 함락을 비롯해 IS격퇴에 가장 큰 공을 세웁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인민수비대와 시리아민주군을, 터키는 미국 요청으로 인민수비대를 지원했습니다.

쿠르드인은 IS를 격퇴하면서 세력권도 확대했습니다. 또한 민주연합당을 포함한 쿠르드 정당들은 2014년 1월 알레포주 아프린과 코바니, 북동부 터키 국경과 인접한 알하사카 등 3개 도시에서 자치 행정을 펼치겠다고 선언합니다. 2016년 3월 민주연합당 등은 이들 세 개 지역에서 자치정부 수립을 선언하고, 향후  IS로부터 되찾을 투르크메니스탄 지방을 포함해 연방제 자치정부 설립 계획도 밝힙니다. 하지만 쿠르드인 연방제 자치정부 선포에 시리아는 물론, 터키도 강력 반발하고 미국도 거부 입장을 표시하면서 난관에 봉착한 상태입니다. 또한,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에게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인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터키 정부는 인민수비대가 터키 내 분리주의자 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과 연계된 조직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서입니다. 

미국의 시리아 철수가 미치는 영향

2018년 12월 미국이 시리아에서 철수를 선언하면서 쿠르드인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IS 격퇴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쿠르드 정치 군사 세력이 미국에게 버림받을 수 있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인데요. 만약 미군 철수 후 터키 군이 시리아 내로 들어오면 쿠르드 자치 지역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쿠르드인은 시리아 정부와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몇년 전과는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 셈이지요.

시리아 북동부에 사는 쿠르드인이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인 것으로 보입니다. 자치정부 출범은 향후 분리 독립으로 가는 첫번째 단계인데, 시리아 주류 집단인 시아파가 이를 수용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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