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치체제의 현주소,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수령통치

소련군의 지원을 받은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연합회의'
1945년 8월 15일 일제 항복 이후 북한 체제가 38도선 이북 지역에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소련군의 북한 지역 점령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소련군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연합회의'를 거쳐 1945년 10월28일 '북조선 5도 인민위원회 및 북조선 행정국'을 창설합니다. 1946년 2월 공산주의자들은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드는데 이는 훗날 중앙 행정기관의 모태가 됩니다. 그리고 1947년 2월에 입법기관은 '복조선 인민회의'를 창립하고 북조선 인민위원회 설치, 헌법 초안 작성, '조선인민군' 창설 등을 포함해 정권 수립을 위한 제반 준비 작업을 진행합니다.
1948년 4월29일 북조선 인민회의는 특별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초안'을 승인합니다. 이후 8월 25일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9월 2일~10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를 개최해 헌법을 최종 채택해 공포하고, 김일성을 내각의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했습니다. 6.25 전쟁 이후 북한의 권력층 내부에서는 전후 복구와 향후 국가 발전 전략과 관련해 정파 간 갈등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갈등은 19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이어지게 되며, 김일성은 이 사건을 통해 중공업 우선의 사회주의 국가발전 전략을 관철시키는 한편 자신과 대립하던 정파들을 숙청합니다. 그리고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으로 시작된 중-소 간 이념 분쟁의 와중에 김일성은 자주적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내세우며 소련파와 연안파 등을 외세 의존적인 정파로 지목해 추가적으로 제거합니다. 권력 독점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한 셈이죠.
1950년대: 사회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토대
1950년대 중후반은 파괴된 전후 경제복구와 더불어 사회주의 경제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토대 마련에 집중했던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겠습니다. 6.25 전쟁 이후 와해된 경제-사회 환경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은 오히려 북한 정권에게는 좋은 조건이 되어버렸습니다. 먼저 농업 협동화와 상공업, 수공업 분야의 협동화를 동시에 진행함으로써 1950년대 말까지 북한은 모든 생산수단을 협동화 또는 국유화 합니다.
한편, 북한은 6.25 전쟁 이후 전후 경제를 건설하기 위한 방안으로 군중 동원의 정치노선을 활성화합니다. 군중 동원 노선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1956년 시작한 '천리마운동'과 1960년에 제기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 그리고 1961년에 제시한 '대안의 사업체계' 등이 있겠습니다.
1960년대: 김일성 유일체계 구축한 북한
1960년대 김일성은 1967년 5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수령 중심의 유일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 12월16일 최고인민회의로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로 추대됩니다. 이후 북한은 절대권력자로서의 '수령'을 정점으로 하는 수령의 유일적 영도 아래 통치되는 유일체계를 구축합니다. 또한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면서 '김일성 유일체제'는 성문화됩니다. 또한 사회주의 헌법은 당의 지도이념으로 마르크스0레닌주의와 병렬해 주체사상을 명시했습니다. 현재 북한의 체제는 이 때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일체제를 구축하면서 김일성은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를 위한 정치적 여건 조성에 착수했습니다. 이를 위해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와 1970년 제5차 당대회에서 권력구조의 변화와 함꼐 수령제를 확립합니다. 1971년 11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 후계 문제를 검토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정일은 차츰 신분을 높여갑니다. 김정일은 1973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7차 전원회의를 통해 조직 및 선전 담당 비서로 선출됩니다. 1974년 2월 개최된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유일한 후계자로서 입지를 두텁게 합니다.

갑작스런 김일성의 사망, 위기관리자로 등장한 김정일
1994년 7월8일 김일성이 사망하고 위기관리 체제로서 김정일 시대의 정치체제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유훈통치, 군사력 증강, 체제 단속을 통해 구축된 김정을 체제는 1998년 헌법에 명시된 것처럼 기존의 국가주석제 및 중앙인민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중심' 체제였습니다. 군사중심 체제는 선군정치를 기본노선으로 해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목표로 설정한 정치체제로서, 2009년 헌법 개정 시 선군정치의 법적-제도적 기반을 강화하고 국방위원장을 최고지도자로 명시했습니다.
한편 김정은은 2010년 9월28일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신설된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공식 등장합니다. 북한 정권은 김정일 유훈, 체제 정통성, 군부 통제, 일심단결 및 결속 유도 등의 권력 강화 과정을 통해 김정은 체제의 권력 강화에 주력했습니다. 김정은은 김정일 사망 추도대회였던 2011년 12월29일 '당과 군대와 인민의 최고령도자'로 격상됐고, 12월30일 노동당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습니다. 이어 2012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김정은은 곧 김정일'이라는 유훈통치를 선언하고 제4차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5차 회의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공식화합니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수령이 군림하는 수령체제
북한의 정치체제는 당-정-군 위에 최고지도자인 수령이 군림하는 수령체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의 정치체제는 일당 지배체제를 가지는 20세기 사회주의 국가의 보편적 성격에 더해 조선노동당을 영도하는 최고지도자로서의 수령 1인의 절대 지배체제라는 특성을 갖기도 합니다.
이런 북한 정치체제의 특성을 권력 구조의 차원에서 본다면, 주체의 핵인 수령이 당-정-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수령은 현재 제도화된 직위인 노동당 총비서와 국무위원장을 포괄하는 권력의 총체적 정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북한에서는 당이 수령체제를 뒷받침하는 유일사상 체계, 유일영도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논리 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20세기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 제도적으로 전제했던 당의 지도적 역할과 무오류성이 북한 정치제제에서는 수령의 영도, 수령에 대한 충성, 수령의 무오류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은 당이 지배하는 당 지배체제라기보다는 당을 영도하는 수령이 지배하는 국가, 즉 수령 지배체제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