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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쿠르드족, 4천년간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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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인은 터키 아나톨리아고원의 동방 지방을 중심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 등과 인접한 산악지대에 분포하는 민족입니다. 4천여년이라는 오랜 역사, 쿠르드어, 산악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 등을 가진 쿠르드인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터키인에 이어 중동에서 네 번쨰로 큰 민족 집단입니다. 하지만, 쿠르드인은 여태껏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하고 아나톨리아 고원 일대에서 터키 등 여러 국가로 나뉘어 살고 있는 비운의 민족이기도 합니다.

세브르 조약에서 시리아 내전까지, 수차례 독립에 실패한 쿠르드

쿠르드인에게도 독립국가를 건설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체결된 세브르 조약에서 쿠르드인에게 독립국가를 만들어 주기로 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 기회는 영국의 무관심으로 무산됩니다. 1946년 구소련 지원을 받아 이란에서 독립 국가가 건국되지만, 1년도 못 가고 사라지기도 하죠.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때 미국을 도운 이라크 내 쿠르드인은 독립 국가 수립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지만 자치정부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시리아 내 쿠르드인도 시리아 내전 중 등장한 IS 격퇴에 1등 공신 역할을 하지만 독립국 수립은 아직 갈길이 먼 상태입니다.

쿠르드인 독립 국가 건설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럿이 있습니다. 분포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족과 씨족 중심의 폐쇄적 문화, 분리 독립 운동 세력 간 분열성, 전체 쿠루드인을 통합시킬 지도자 부재, 주변국과 서방 세계 무관심,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발원지라는 지리적 조건 등이 그 이유죠. 이런 장애물 때문에 중동 최대 유랑 민족 쿠르드인의 독립 국가 건설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산악과 고원으로 이뤄진 쿠르드인의 땅, 쿠르디스탄

쿠르드인은 터키 아나톨리아고원, 아르메니아 카프카스 산맥, 이란 엘부르즈 산맥, 이란고원 중앙부 등 주로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과 산악지대에 분포합니다. 이 일대를 쿠르디스탄이라고 부르며, 이는 다분히 지리적 경계와 문화적 동질성에 근거한 범위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쿠르디스탄 범위를 획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쿠르디스탄에는 쿠르드인만 독점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른 종족, 민족이 혼재돼 있고, 뚜렷한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쿠르디스탄의 대략적인 범위 설정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동쪽은 이란고원에 위치한 하마단, 남쪽은 이란 자그로스산맥 북서부 케르만샤~이라크 아르빌~시리아 알 하사카~만비즈 등, 서쪽은 터키 가지안테프~카흐라만마라스~시바스 등, 북쪽은 조지아 국경과 인접한 카르스 등을 연결하는 내부 영역으로 전체적인 모양은 초승달 형태입니다.

쿠르디스탄 전체 면적은 약 39만 2000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1.8배 크기이며, 터키 19만제곱킬로미터, 이란 12만5000제곱킬로미터, 이라크 6만5000제곱킬로미터, 시리아 1만2000제곱킬로미터 등에 걸쳐 있습니다. 쿠르디스탄에 거주하는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파리 쿠르드연구소 2016년 자료를 보면, 대략 3520만~4410만명이 쿠르디스탄에 분포합니다. 국가별로는 터키에 1500만~2000만명, 이란에 1000만~1200만명, 이라크에 800만~850만명, 시리아에 300만~360만명,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에 40만~50만명 등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계됩니다.

쿠르디스탄 지리는 전형적인 산악과 고원지대로 이뤄져 있습니다. 쿠르디스탄 범위의 40% 정도는 터키 아나톨리아고원에 걸쳐있고, 남쪽 경계는 토로스산맥입니다. 쿠르디스탄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나톨리아는 그리서으로 해가 뜨는 동쪽을 뜻하며,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소아시아로 불렸습니다. 아나톨리아고원 평균 해발은 600~1200m이고, 최고봉은 이란과 국경을 이루는 아라라트산입니다. 터키에서 가장 큰 호수 반호는 쿠르디스탄 중심을 형성하죠. 동부 쿠르디스탄은 아라라트산에서 이란 동남쪽 페르시아만으로 뻗은 자그로스산맥 한복판에 위치하며, 남부 쿠르디스탄은 이라크 키르쿠크와 아르빌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그로스산맥과 연결된 아라비아고원에 속합니다. 반면, 서부 쿠르디스탄은 대부분 평지로 이뤄져 있죠.

쿠르드인의 국기

불운했던 쿠르드인 민족사

쿠르드인은 역사 시대 이전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경 생활을 하거나 주변 고원과 산악지대에서 유목 생활을 하며 거주한 민족입니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 수메르인 기록에 쿠르드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산악 부족들이 자주 언급되는 것을 고려하면 쿠르드인은 중동에서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이 분명하죠.

쿠르드인 기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대 이란 북부 메디아인과 관련된 것입니다. 메디아인은 기원전 7세기 말 이란고원과 고대 아시리아 영토를 중심으로 메디아 왕국을 세웁니다. 아스티아게스 국왕은 후사가 없자 딸을 페르시아 장군과 결혼시키는데 그 외손자가 바로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을 번성시킨 왕으로 추앙받는 키루스 2세입니다. 기원전 550년 메디아 왕국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에 편입됩니다. 다른 하나는 기원전 3000년 중반에 있었던 쿠티족에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지금의 이라크를 기반으로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집단입니다. 이후 쿠르디스탄은 알렉산드로스, 로마 제국, 파르티아 제국 등의 지배를 받습니다. 특히 로마 제국과 이란계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쿠르디스탄은 서쪽 비잔틴과 동쪽 페르시아 문화권으로 각각 분할됩니다.

7세기 아랍 제국이 등장하면서 쿠르디스탄은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의 지배를 받고, 이슬람을 받아들입니다. 10세기 후반 압바스 왕조 칼리프 통치 능력이 약화되면서 쿠르드인은 작은 부족 국가들로 나뉘지만 이후 셀주크투르크와 몽골 제국의 침입을 받습니다. 16세기 들어 쿠르디스탄의 3분의2는 오스만 제국으로, 3분의1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 영토로 다시 분할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동부 쿠르디스탄에 산재한 쿠르드 부족의 족장에게 자율적인 통치권을 부여하는 대신 이란 사파비 왕조 침입을 견제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데요. 사파비 왕조도 서부 쿠르디스탄에 위치한 부족 국가에게 같은 임무를 부여합니다. 결과적으로 동부 쿠르디스탄은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 간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 지대로 전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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