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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소말리아와 달리 평화로운 소말릴란드, 그곳에도 반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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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 소말릴란드에서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로 최소 34명이 숨졌다고 로이터 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습니다. 소말릴란드 정부는 트위터에서 반정부 무장단체가 이날 오전 일찍 동부 소말리아 접경 술 지역 라스아노드의 군부대와 정부 사무실을 공격했다고 밝혔는데요. 정부군이 반군을 퇴치하는 과정에서 최소 34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고 라스아노드 병원의 한 의사가 전했습니다. 이날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는 단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사건이 주목받는 건 소말리아와 달리 소말릴란드는 비교적 안정된 치안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져서인데요. 1991년 소말리아 북부에서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는 아직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본토와 달리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유지해 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몇 안 되는 안정된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로 꼽히기도 하죠. 그러나 라스아노드와 주변 지역에서 일부 부족 지도자들이 소말리아에 다시 합류되기를 원하며 소말릴란드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면서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소말릴란드

소말릴란드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렇다면 소말릴란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시기는 1960년까지 거슬러올라갑니다. 제국주의가 횡횡하던 시기 소말리아는 영국령과 이탈리아령으로 나뉘어있었는데요. 1960년 6월26일 영국령 소말릴란드는 5일 후인 7월1일 독립하는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와 연합할 계획으로 영국으로부터 잠시 독립했고,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가 독립하면서 소말리아라는 국호로 합쳐졌습니다.

그러나 하르게이사를 비롯한 전 영국령 소말릴란드 지역은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한 소말리아 남부에 비해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돼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갈등은 1969년에 무함마드 시아드 바레 대통령이 쿠데타로 집권하면서 심화됐는데요. 바레는 오가덴 전쟁의 여파로 소말리아 전역이 혼란스런 마당에 자신의 씨족인 다로드-마레한 족에게 권력을 몰아주고 다른 씨족을 차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격렬하게 반발한 여러 씨족들 중 3대 씨족인 하비에 족(통일소말리아회의 / USC, 1987년), 다로드 족(소말리아애국운동 / SPM, 1989년), 이사크 족(소말리아국민운동 / SNM, 1981년)이 각자 반군을 구성하고 연합해 바레 정권에 대항했습니다. 이 시기가 과거 영화로 만들어진 '모가디슈'의 역사적 배경이기도 합니다.

끊이지 않는 내전 끝에 1991년 반 시아드 바레 연합은 수도인 모가디슈를 장악하고 바레 정권을 붕괴시켰지만 내부의 권력 투쟁이 격화되면서 결국 내란으로 번졌습니다. 그러던 중 1991년 SNM은 독립을 선언했고, SNM의 지도자였던 투르(Abdirahman Ahmed Ali Tuur)가 대통령으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이권을 둔 씨족간 다툼은 끊이지 않았고, 1992년 베르베라 항구에서 내전이 발생해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1993년 보라마라는 곳에 소말릴란드 모든 씨족이 모여 3달 간 평화협상을 합니다. 협상 결과 각 씨족은 민병대를 해체하고 무기를 회수하기로 합의하는데요. 그리고 원로들의 투표를 통해 바레의 쿠데타 이전까지 소말리아의 총리였던 에갈을 대통령으로 선출합니다.

무장 해제는 대부분의 씨족에서 원만하게 진행됐으나, 이전 집권 세력이던 하바르 유니스(Habar Yunis) 씨족은 대통령 선출, 특히 베르베르 항구 및 하르게이사 공항의 관세 이권이 정부로 이양되는 것에 반발해 무장 해제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1994년 또다시 내전이 발발했고, 1996년 10월 하르게이사에서 열린 평화 협상을 통해서야 진정됩니다. 이때 소말릴란드 헌법이 제정되는데 이 때 나라의 기본 골격이 만들어집니다. 복수정당제, 무장해제 완수 등이 헌법에 담기죠. 그리고 2001년 주민투표로 소말릴란드 헌법이 통과됐고, 2003년 대통령선거를 치른 이래 큰 분쟁 없이 평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말릴란드 국기

민주주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아프리카 '미승인국'

소말릴란드는 민주주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아프리카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현재 내전과 군벌들로 무정부상태가 되어 무법천지가 된 소말리아보다는 훨씬 안정적입니다. 공인 정당은 3개로 한정되며, 매 10년마다 정당 3개를 선택하는 선거를 치릅니다. 이는 정당 수를 제한함으로써 씨족별 정당이 난립하는 것을 막고 각 씨족이 정치를 위해 협력하게 유도한 것인데요. 총 득표율에서 상위 3위에 드는 정당이 공인되며, 각 정당은 총 득표율과 별개로 여섯 선거구 중 최소 네 선거구에서 20% 이상의 득표를 해야 합니다. 이 또한 정당이 특정 씨족을 대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죠. 입법부는 양원제로 의회와 원로원(구르티, Guurti)으로 구분된다. 둘 다 82명의 의석을 가지고 있으며, 임기는 5년이다. 의원은 총선을 통해 선출되며, 원로는 씨족의 비례대표로 구성됩니다. 

2003년 최초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으며, 대통령의 임기는 7년입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는 세계 최초로 홍채인식 확인절차를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최근 들어서는 2021년 5월 31일, 2005년 의회 구성 이후 처음으로 의원 선거를 치렀는데요. 65.3%의 투표율을 보여준 의원 선거는 두 야당의 연정으로 인한 집권 여당의 패배로 결정됐고, 관련 부처 내 권력 이양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소말리아의 평화가 깨진 이유 푼틀란드?

이번 공격의 주범으로는 푼틀란드가 지목됩니다. 푼틀란드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 소말리아의 자치 행정구역인데요. 내전 이후 인구가 가장 몰린 지역이며, 소말리아 연방 과도 정부의 통치력이 매우 약한 곳 중 하나입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이 발발해 명목상으로 국민들의 서비스 제공, 자유 무역, 치안 유지를 위해 자치 국가를 선언한 곳이기도 하죠. 

이번에 교전이 벌어진 소말릴란드의 라스 아노드시의 상황은 상당히 복잡합니다. 우선 푼틀란드 지역과 계속 분쟁 중인 지역 중 하나입니다. 동시에 이 지역의 씨족인 둘바한테 일족의 지역 원로들은두 주장을 모두 거부하고 소말리아 연방 내에서 새로운 주를 수립할 계획이며 소말릴란드 군대가 이 지역을 떠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초 야당 정치인 압디타파 압둘라히 압디의 암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후 소말릴란드 군은 철수했지만, 이번 주 다시 이곳으로 파견됐고 이번 전투가 벌어졌죠.

소말릴란드는 푼틀란드가 해당 지역에 군사력을 보낸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소말릴란드는 지도자들이 라스 아노드와 씨족 관계를 맺고 있는 푼틀랜드가 소말릴란드 군대와 싸우는 민병대에 합류하기 위해 전사들을 보낸 것에 대해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푼틀란드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죠. 소말리아 대통령 하산 셰이크 마흐무드(Hassan Sheikh Mahmoud)는 화요일 소말릴란드가 라스 아노드(Las Anod)의 전통적인 장로들과 협상할 것을 촉구하면서 진정을 촉구했습니다.

소말리아에 대한 미국의 태도 또한 이곳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하나의 소말리아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북부 항구 도시 베르베라에 군사 허브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소말릴란드와의 파트너십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말리아와의 관계는 다음에 또 글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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