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배상을 위한 우리 정부의 안을 발표했습니다. 일제강제동원지원재단이 한국 기업들에게 기부금을 받아 피해자들이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배상이 그 내용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기업의 돈으로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 등 피고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진 채무를 대신 갚아주겠다는 게 정부안의 골자입니다.
당연히 여론은 급격히 악화됐습니다. 특히 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일본 피고기업의 채무를 대신 갚아줘야 하느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이에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래는 6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전체를 읽어본다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모두 인용해 놓겠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 "노무현정부가 내린 결론도 결국..."
"1965년에 한일 양국이 수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기본 조약을 체결했고, 그때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었습니다. 거기 제2조의 1항과 3항, 그리고 합의의사록에 보면 강제징용 문제를 포함해서 한국정부가 앞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지불할 5억 불의 보상금을 사용해서 우리 국민의 개인청구권을 일괄 대리해서 지원금을 수령하기로 한다는 약속이 적혀있고, 이 약속이 53년동안 지켜져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지만, 어쨌든 국제법적으로, 그리고 65년도 한일 양국 정부의 약속에 비추어 보면 2018년 대법원의 판결은 일본으로서는 한국이 합의를 어긴 것이다라는 결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박정희 정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74년에 특별법을 만들어가지고 강제징용자 피해자 8만 3519건에 대해서 약 92억 원을 지불했는데요. 그것이 일본이 우리한테 준 3억 불 무상자금의 9.7%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노무현정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1965년도에 맺은 한일 외교 비밀협약서에 비밀 해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그 협상 기록을 40년 만에 열어보게 되었는데, 그때 이 징용 문제가 어떻게 논의가 되었는지 낱낱이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박정희 정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1974년에 특별법을 만들어가지고 강제징용자 피해자 8만3,519건에 대해서 약 92억 원을 지불했는데요. 그것이 일본이 우리한테 준 3억 불 무상자금의 9.7%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노무현정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1965년도에 맺은 한일 외교 비밀협약서에 비밀 해제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그 협상 기록을 40년 만에 열어보게 되었는데, 그때 이 징용 문제가 어떻게 논의가 되었는지 낱낱이 확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노무현정부가 내린 결론도 결국에는 65년도에 우리정부가 모든 우리 국민 배상 책임을 지기로 했구나, 협상 기록 검토를 마치고 또 다시 2007년에 특별법을 만들게 됩니다. 이때 7만8천 명에 대해서 6천5백억 원을 다시 2차로 배상하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이 볼 때는 한국이 계속 65년도 합의에 의해서 한국정부가 자체적으로 징용 피해자에 대해서 피해를 다루고 배상을 해 왔는데, 2018년 판결을 일본 피고 기업이 수용하고 배상 절차에 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를 일본은 국제법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따라서 일본을 대변할 필요는 없지만, 지난 정부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일본, 피고기업 두 개가 참여하는 배상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입장이었고,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죽어도 하지 못한다, 그것이 일본의 입장이었고, 일본은 그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으면 가지고 와봐라 하고 5년 동안 한일관계가 흘렀던 것입니다."
1965년 한일수교로 이뤄진 강제동원 보상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이야기한대로 1965년 한일 양국은 수교를 합니다. 그 대가로 한일 협정이라는 것을 체결합니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인데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일제의 식민 지배 피해에 대한 배상 문제를 말끔히 처리하지 않은 채 국교를 맺어 지금까지 비판을 받고 있는 바로 그 조약입니다. 당시 일본은 식민 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고, 한국은 청구권 3억 달러와 경제 차관 2억 달러를 지원받는 대신 식민 지배의 피해에 대한 모든 배상을 포기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해당 협정 합의의사록에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되는 청구권협정상 청구권에 대한 문제에는 '한국의 대일청구요강'의 범위에 속하는 모든 청구가 포함되어 있고, 따라서 동 요강에 관하여는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게 됨을 확인했다"고 적었습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청구권 자금에 따른 국내 보상을 위해 '청구권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1966년2월), '대일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1971년1월)',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1974년12월)' 등 관련 법률을 제정한 후 1975~1977년간 보상을 실시했습니다.
노무현 정부 '민관공동위원회 개최'
이후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월께 한일협정과 관련한 일부 문서가 공개됐습니다. 그 후 '한일회담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라는게 만들어집니다. 한일협정이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자 한 것이었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노무현정부가 내린 결론도 결국에는 65년도에 우리정부가 모든 우리 국민 배상 책임을 지기로 했구나, 협상 기록 검토를 마치고 또 다시 2007년에 특별법을 만들게 됩니다"라고 말한 것도 당시 위원회의 발표를 기초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는 실제로 한일협정과 강제동원에 대해 이렇게 판단했을까요?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언급한 것과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2005년 8월26일 국무조정실이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 개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보도자료를 보면 "한일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해 한일양국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 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며 "사할린동포, 원폭피해자 문제도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위원회는 "한일협상 당시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 보상을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고통받은 역사적 피해사실'에 근거하여 정치적 차원에서 보상을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요구가 양국간 무상자금산정에 반영되었다고 보아야 함"이라고 명시했습니다.한일 협정으로 일본에서 받은 돈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보상 성격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배상'이라고 한 것과는 차이가 큽니다. 못 받은 임금과 수당 등 노역의 대가를 받는 게 보상입니다. 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법원에서 받은 판결은 보상이 아닌 배상, 즉 불법 행위로 입은 피해에 대한 손해 배상을 인정한 겁니다. 특히, 일본 기업들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는 일본 정부의 불법 식민 지배와 직결됐다고 전제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해석입니다.
물론 저런 설명을 하는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윤석열 정부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다면 여론을 잠재우기 좋은 무기가 될테니까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서에 적힌 내용까지 왜곡한다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라는 책임감을 다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2023.01.31 - [한국의 외교 ·영토 분쟁] - 강제동원 해법 진단, 일본은 왜 '구상권 거부'를 요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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