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5) 썸네일형 리스트형 90도까지 치들어야 하는 다리, 죽음의 북한 열병식 현재 세계적으로 대규모 열병식은 과거 공산주의국가였거나 현재 공산주의국가들인 러시아, 중국, 북한에서 발견됩니다. 이들 국가는 주요 국경일이나 주요 국가기념일을 기해 대규모의 열병식 퍼레이드를 통해 군사력을 전세계에 과시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열병식 개최 빈도수는 특히 많은데 그것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히 증가했습니다. 또한 북한은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100회 생일을 기념하는 역대 최대규모의 열병식을 개최하면서 내외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카드섹션과 다리를 높이 치든 구스스텝으로 유명한 북한의 열병식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도 이때즈음입니다. 열병식의 나라 북한, 2월 개최 유력 이들 중에서도 열병식 하면 빠지지 않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한입니다. 비대칭 무기와 군사수를 대외에 .. 쿠르드족 독립을 줬다 빼앗은 영국 로잔 조약으로 좌절된 쿠르디인의 독립 국가 제1차 세계대전은 쿠르디인에게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안겨 준 시기입니다. 1890년대 후반 쿠르드인 사이에서 등장한 민족주의 움직임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 나타나기 때문에 별 효과를 거두지는 못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자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인을 아르메니아 집단 학살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 참여시키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은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에 입각한 전후 처리 문제를 주장하는데요. 윌슨 대통령이 제시한, 전쟁 관련 이행당사국간 세력 균형보다는 민족자결권을 우선시한 국경선 재조정 원칙은 쿠르드인에게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게 하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 영토 분할을 추진하는데요. 이.. 쿠르드족, 4천년간 나라 없이 떠도는 민족 쿠르드인은 터키 아나톨리아고원의 동방 지방을 중심으로 시리아와 이라크 이란 등과 인접한 산악지대에 분포하는 민족입니다. 4천여년이라는 오랜 역사, 쿠르드어, 산악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 등을 가진 쿠르드인은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터키인에 이어 중동에서 네 번쨰로 큰 민족 집단입니다. 하지만, 쿠르드인은 여태껏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하고 아나톨리아 고원 일대에서 터키 등 여러 국가로 나뉘어 살고 있는 비운의 민족이기도 합니다. 세브르 조약에서 시리아 내전까지, 수차례 독립에 실패한 쿠르드 쿠르드인에게도 독립국가를 건설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체결된 세브르 조약에서 쿠르드인에게 독립국가를 만들어 주기로 했던 것이죠. 하지만, 이 기회는 영국의 무관심으로 무산됩니다. 1946년 구소련 지원.. K806, K808 한국군 차륜형 장갑차의 개발 K806/K808 차륜형 장갑차 K808/K808 차륜형 장갑차는 전력화가 진행 중입니다. 여태껏 다른 전력들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던 시기가 길었지만, 현대전에서 기동력과 시가지 운용성이 중요해지면서 차륜형 장갑차는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차륜형 장갑차의 전력화도 시작됐습니다. 2012년부터 본격 개발을 시작한 차기 차륜형 장갑차는 2016년 5월 전투용 적합 판정과 국방규격 제정으로 연구개발이 종료됐습니다. 개발이 완료된 차륜형 장갑차는 6X6 형태의 보병수송용 버전은 K806, 8X8 형태의 보병전투용 버전은 K808의 제식명이 부여됐습니다. K806/K808 장갑차는 미래 군 구조 개편에 대응하고 현대 전장에서 기동력 및 타격력, 생존성을 높이기 위해 전력화할 장비입니다. K8.. K21부터 K200까지, 한국군의 장갑차 K21 보병전투 장갑차 한국형 보병전투 장갑차 K21은 K200 시리즈를 대체할 차량입니다. 1990년대 초부터 연구가 시작됐죠. 연구 단계에서는 CV-90이나 미군의 M2 브래들리를 염두에 뒀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오랜 연구 끝에 2005년 5월 NIFV(차기 보병전투차)라는 이름으로 시제차량을 공개했고, K21이라는 제식명칭을 부여해 현재 실전에 배치했습니다. K21 한국형 보병전투차는 주무장으로 40mm 기관포를 장착하고, 군수지원 없이 독자적인 도하 능력을 갖추기 위해 중량을 21t으로 억제하면서도 러시아제 30mm 기관포탄을 방어하기 위해 복합적층 장갑구조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레이저 위협 경보기와 자외선 미사일 경보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주무장인 40mm 기관포는 스웨덴 보포.. 표류하는 오슬로 협정, 양분된 팔레스타인 정치지형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철수와 표류하는 오슬로 협정 1998년 10월 오슬로 협정의 세부 실천사항을 보다 구체화시킨 와이리버 협정이 체결됩니다. 제3차 중동 전쟁에서 점령한 웨스트뱅크를 팔레스타인에 단계적으로 양도하고, 자치 지역 범위를 웨스트뱅크의 40%로 확대하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헌장에 명시된 이스라엘 전복 규정을 삭제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1999년 9월 수정 와이리버 협정도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전술한 일련의 평화 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2000년 9월28일부터 아랍인 거주 지역에서 제2차 인티파다가 일어나 많은 유혈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이미 체결된 협정 내용들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라파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 내 평화 공존을 위해 최대 무장 단체인 하마스에 내각 참여를 제의하지만 하마스.. 중동전쟁의 발발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결성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발발한 중동전쟁 UN 결의안에 대해 팔레스타인 아랍인은 물론이고 주변 아랍국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를 제1차 중동전쟁이라고 합니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자 미국은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합니다. 하지만 그날 밤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등 아랍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합니다. 전쟁은 애초에 예견됐던 것이었습니다. 주변 아랍국들은 만약 이스라엘을 건국하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1949년 1월7일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납니다. 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인구 약 5700여명이 사망하지만, 이스라엘은 영국이 위임 통치하던 서부 팔레스타인의 80%를 가져가게 됩니다. .. 영국의 팔레스타인 통치 포기, 이스라엘의 독립 알리야 전개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 포기 밸푸어 선언은 알리야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민족 대립을 촉발한 기점이었죠. 알리야란 히브리어로 오르다를 뜻합니다. 유대인의 대규모 이민 행렬을 일컫기도 하죠. 알리야라는 이름으로 유대인 이주는 여러 차례 진행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 1882년부터 1903년 사이에 소규모 알리야가 있었지만, 1920년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하면서 본격적인 이주가 이뤄집니다. 러시아와 폴란드 출신이 이주한 제2차, 러시아 출신이 이주한 제3차, 폴란드 출신이 이주한 제4차, 독일 출신이 이주한 제5차 알리야 등이 차례로 행해집니다. 1882년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5만여명에 불과했지만, 1914년 6만명, 1922년 8만3790명, .. 이전 1 2 3 4 5 6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