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에 입성했지만 무자헤딘에 굴복한 소련
1947년 파키스탄이 영국에서 독립하자,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에게 듀렌드 라인의 재획정을 요구하지만 동의를 얻지 못합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파슈툰족은 파키스탄에 사는 파슈툰족과 함꼐 파슈투니스탄 창설을 제안하지만 이 또한 성사되지 못합니다. 영국이 인도반도에서 철수하자 수련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아프가니스탄에 친러시아 정권을 수립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레이트 게임에서 영국에게 뒤쳐졌던 당시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었던 것인데요.
아프가니스탄은 1972년까지 기존 왕조 체제가 유지되지만, 1973년 국왕 친족인 모하메드 다우드 전 총리가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민주공화국을 수립합니다. 친소 성향을 보인 다우드 대통령은 1977년부터 자주 노선을 선언하고 친소 성향 공산당원을 대거 숙청합니다. 이에 친소 성향의 일부 장교들이 1978년 4월 쿠데타를 일으켜 다우드 정권을 무너뜨리고 타라키 정권을 네세우고 1979년 9월에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 아민 정권이 수립되는데요. 이런 상황에 1979년 이란에서는 이슬람 혁명이 성공하고, 이에 영향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구소련을 상대로 반란을 자주 일으키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영향력도 행사하고, 이란에서 성공한 이슬람 혁명 물결이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거쳐 러시아 남쪽 변경 지역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할 필요를 느끼는데요. 그렇게 하기 위해 구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1979년 12월 구소련은 카불에 입성합니다 .친러시아 카르말 정권이 수립되지만, 1980년 3월부터 아프가니스탄 내 다수 온건파와 수니파 원리주의자들이 이슬람 전사라는 뜻의 무자헤딘을 결성해 소련을 상대로 성전을 펼칩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주축인 무자헤딘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성전 참여를 촉구하고, 많은 지하디들이 대거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옵니다. 알카에다를 만든 오사마 빈라덴과 그의 정신적 스승 압둘라 아잠도 같은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와 무자헤딘에 참여합니다. 특히 두사람은 1982년 시리아에서 발생한 하마 사태로 난민 신세가 된 시리아 지하디를 자신이 만든 군사 학교에 입교시키고 훈련시켜 무자헤딘이 벌이는 성전에 투입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깊은 계곡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성전을 치르기에 최적의 자연적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1989년 2월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합니다. 무자헤딘에 소련이 굴복한 것인데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소련은 무자헤딘을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깊은 계곡과 높은 산지로 이뤄진 지형적 조건, 지하드를 수행한다는 종교적 임무, 파슈툰족을 비롯한 산악 민족 특유의 용맹성과 상무 정신, 러시아에 대한 역사적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특히 파슈툰족은 역사적으로 러시아인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고, 레닌과 스탈린의 사회주의 정치를 피해 이주해 온 북부 지역에 사는 타지크인과 우브베트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소련 군대가 아프가니스탄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발상은 근본적으로 성취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소련군의 철수 이후 내전에 빠진 아프가니스탄
하지만 소련군의 철수는 아프가니스탄을 내전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게 합니다. 소련군 철수 이후 무자헤딘에 참여한 제 정파-종파 간 권력 쟁탈전이 벌어졌기 때문인데요. 1994년부터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탈레반이 등장하면서 내전 방향은 보수 이슬람 세력과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간 대립으로 증폭됩니다. 마침내 탈레반이 1996년 9월 카불을 점령하면서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이 수립됩니다.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 시아파는 북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거점으로 북부 동맹을 결성해 내전을 계속 이어갑니다.
탈레반은 파슈토어로 학생 조직을 뜻하며 정통 이슬람 국가 건설을 지향했습니다. 탈레반이 내건 샤리아법이 행해지는 정통 이슬람국가 건설에 전 세계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환호하고 적극 지원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권을 쟁취한 탈레반 세력은 도덕심 함양과 악덕 행위 방지부라는 정부 조직을 만들어, 이슬람 율법의 전면적 시행, 주류-마약 판매 금지, 여성의 부르카 착용 의무화, 여학교 폐쇄, 여성 공직 참여 금지, 석불 파괴 등 급진적인 정책을 취합니다. 이런 정책에 대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평가는 찬반으로 엇갈리는데요.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탈레반 정권은 붕괴합니다.
2004년 10월 미국과 서방 세계 지원을 받은 새 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탄생합니다. 그리고 칸다하르 출신 파슈툰족인 하미드 카르자이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1979년 구소련 침공 이후 거의 20여년만에 평화가 정착되고, 여성들 사회 참여도 재개되며, 폐쇄된 학교도 다시 문을 엽니다. 국가 재건을 위한 다양한 경제개발 사업도 진행됩니다. 하지만 2006년 이후 탈레반 세력이 남북부 지역, 탈레반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남부 지역으로 사실상 나뉘어졌습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2011년 5월 미국에 의해 사살됩니다.
탈레반은 2021년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합니다.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정으로 당초 2020년 12월 25일까지 미군이 철수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여러 차례의 연기 끝에 2021년 8월 31일까지 철수하기로 합니다. 8월 15일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복 선언을 하고, 과도정부 체제로 전환하여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는데요., 가니 대통령은 전격 사퇴를 발표하였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해산되었습니다. 이로써 판지시르를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다시 탈레반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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