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축출된 뒤 여당 당사가 불타고 있습니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난 아프리카의 국가, 니제르의 상황입니다. 혼돈의 니제르에는 대체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니제르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오늘은 니제르의 현대사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칼리프 국가였던 니제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다
니제르는 아프리카 중서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정식명칭은 니제르공화국입니다. 니제르는 19세기 이슬람 신정 국가였습니다. 하우사족 성직자 우스만 딘 포디오의 지휘를 받는 풀라족이 기마 유목민 문화를 도입하고 기병 전역을 강화하며, 하우사계 소국들을 통일하고 이슬람 신정 국가인 소코토 칼리프국을 세웠죠. 당시 풀라족들이 세운 소코토 칼리프국은 단순한 연맹 국가가 아닌 나이지리아 최초의 봉건 제국이었습니다. 소코토 칼리프국에서 갈라져 나온 풀라족들은 말리의 바마나 제국과 세네갈의 졸로프 왕국마저 멸망시켰으며 정복 전쟁의 결과로 니제르의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 거주하던 풀라족 상당수가 서쪽의 더 비옥한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19세기 수립된 신정국가가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습니다. 인구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우라늄과 철광석, 주석, 인광석 등의 지하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이 나라는 여타 아프리카 국가와 마찬가지로 서구 열강인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았습니다. 현재 니제르의 공용어가 프랑스어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니제르는 프랑스어를 모국어나 행정 언어로 쓰는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기구인 프랑코포니의 정회원 국가이기도 합니다. 니제르 문제에 프랑스가 깊게 개입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를 인지하고 있으면, 니제르 문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니 생각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길었던 쿠데타, 짧았던 민주주의 통치
1904년, 프랑스에 식민 통치를 받기시작한 니제르는 1960년 8월 3일 그렇게 원하던 독립을 맞이합니다. 독립 이후 다수 종족을 결합한 통일국가로 안정된 정치발전을 이끌어 나가던 니제르. 그러나 1974년 4월 쿤체 육군 중령이 군사 쿠데타를 주도해 정권을 장악한 뒤 강력한 1인 독제체제를 형성합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쿤체 대통령은 1987년 11월 병으로 죽고 맙니다. 이에 군사최고회의는 참모총장 알리 사이부를 후계자로 확정하죠.
이에 반발이 확산하자 1992년 12월, 다당제 아래 대선과 총선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신헌법안이 채택됩니다. 민주주의 체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렇게 1993년 3월 9개 야당연합의 사회민주당 당수인 마하마네 우스마네가 대통령으로 당선됐고, 같은 해 4월 제3공화국이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996년 1월27일 아브라힘 바레 마이나사라 육군 대령이 우스마네 정부를 전복해 6년에 걸친 다당제 민주주의는 종말을 고합니다. 사흘 후 새로 설치된 국가구제위원회는 부카리 아지를 총리로 임명하고 전원 민간인으로 구성된 내각을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바레는 모든 권력을 대통령, 즉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새 헌법을 1996년 6월 통과시킵니다. 그리고 1999년. 재선에 도전하던 바레 대통령에게 악재가 닥칩니다. 야당이 부정선거 의혹을 대법원에 제기했고,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반대시위가 이어지던 상황 속에서 바레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가다 군인들의 반란으로 암살당했습니다. 당시 쿠데타를 지휘한 장군 다우다 말람 왕케는 약 6개월 간 민정 이양을 준비했고, 이후 마마두 탄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탄자는 정말 가난했던 니제르를 나름 잘 이끌고 갔습니다. ODA를 받기 위해 발벗고 뛰었고, 미국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니제르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 그러나...
그러나 쿠데타로 점철된 니제르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10년 살루 지보라는 인물에 의해 다시 한 번 쿠데타가 발생했고, 탄자 대통령은 니아메에 있는 병영으로 도피했습니다. 다만, 쿠데타 세력이 이전처럼 국가를 장악하지는 못했고 오랜 기간 니제르의 야당인 민주사회당의 지도자로서 활동했던 마하마두 이수푸가 2011년 4월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니제르 독립 이후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교체였습니다.
그리고 2021년 니제르는 10대 대통령으로 모하메드 바줌을 선출합니다. 그리고 니제르는 다시 한 번 테러와 납치, 폭력으로 뒤엉킨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1월 2일에 무장단체에 의한 공격으로 민간인 70명 이상이 사망합니다. 3월 15일에 무장단체가 시민들을 공격해 최소 58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에 니제르 정부는 하루 동안 국가애도일을 선포합니다. 같은 해 3월 31일에는 바줌 대통령의 취임식도 전에 일어날려고 했던 쿠데타 시도가 저지됐습니다. 4월 2일에 취임한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은 일련의 테러에 대해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죠. 그러나 테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8월 17일에 니제르 서부에서 괴한들의 공격으로 어린이 13명을 포함해 민간인 37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 쿠데타가 발생해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이 억류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모하메드 바줌 대통령 퇴임으로 이어진 최근 니제르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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